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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유산

금사동토성 금사동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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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동토성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지정일1981년 04월 01일
  • 시대삼국시대
  • 소재지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산26

상세정보

이 성(城)은 장문리(長文里)와 은선리(隱仙里)의 경계를 이루는 응봉산(應峰山)의 북쪽 계곡을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성(城)의 이름은 골짜기의 이름 금사동을 따서 삼았다.
성의 둘레는 2,65m인데, 북쪽 골짜기에 문터(門址)와 수구(水口:물 나가는 구멍)가 있다.

산(山)의 정상(頂上)쪽으로는 봉우리가 있으면서 내성(內城)을 이루었고, 남문터(南門址)와 내성(內城) 북쪽으로는 우물터 세 곳과 수구터(水口址) 세 곳이 있다.
이와 같이 내(內) 외(外) 이 중의 성터(城址)는 옛 백제지역(百濟地域)의 중요한 성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의 것으로 주목되며, 따라서 이 성(城)은 백제후기(百濟後期)의 오방성(五方城) 가운데 중방 고사성(中方古沙城)의 터(址)가 아닌가 추정(推定)되기도 한다.

성내(城內)에서는 백제시대(百濟時代)의 것으로 여겨지는 그릇 조각들이 많고, 성(城)의 주변지역에 옛 탑(塔)과 고분군(古墳群)이 분포(分布)되어 있기도 하다.
이 산(山)은 두승산(斗升山)과 천태산(天台山)으로 북쪽으로 가는 지맥(支脈)이 천치(天峙)에서 갈라져 서쪽으로 줄기한 200m 높이와 170m 높이의 두 봉(峰)에서 북으로 가는 산 줄기가 깊은 계곡(溪谷)을 만들어 놓았다.

은선리 금사동(隱仙里 金寺洞) 골짜기 산 중턱에 자리잡은 산성(山城)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記)에 전(傳)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건국(百濟 建國)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 36년에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으로 보이며, 백제 5방성(百濟五方城)의 하나인 중방고사성(中方古沙城)의 터로 보이기도 한다.
산성(山城)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분한다. 외성의 규모는 동서길이 170m,남북의 길이 620m의 평면(平面)으로 총주위(總周圍)는 2,365m에 이른다.
남변(南邊)은 산능선(山綾線)을 다라 석축(石築)이고, 그 길이는 778m이며, 동변(東邊)의 길이는 518m로 그 가운데 쯤에 수구(水口)가 있고 북문지(北門址)가 있다. 수구(水口) 서쪽 성안에는 폭 120m 정도의 평탄한 태지(台址)가 있으나 민가(民家)가 있던 흔적은 없다.

은선리에 살고 있는 옛날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금사동(金寺洞)에는 사람이 못산다는 『타 부』가 있다고 한다.
내성(內城)은 외성(外城) 남단(南端)을 외곽(外廓)으로 하고, 동변(東邊) 300m, 북방(北方)에서부터 산(山) 북쪽 경사면으로 가운데를 감은 토루(土壘)와 회랑도로(回廊道路)가 지형(地形)을 따라 곡선(曲線)을 이루면서 서쪽으로 내려가는데 146m 북방 외곽에 연결된다. 내성(內城) 북변(北邊)의 길이는 1,036m로서 내성주위(內城周圍)는 2,394m에 이른다.
내성(內城)은 동서(東西) 양봉(兩峰)을 감고 그 중간안부(中間鞍部)는 폭 2m에 36m, 길이 427m 이르는 평탄한 대지(臺地)를 형성하는데 여기는 건축물(建築物)의 터(址)인 것 같다. 그 남변(南邊)의 중앙에 남문지(南門址)가 있다.

동봉(東峰)은 200m의 대지(臺址)를 이루어 산성(山城) 노릇을 한 것 같다.
서봉(西峰) 위에 보대지(堡臺址)가 있는 흔적이 있다.
내성(內城) 북변(北邊)에는 세곳에 수구(水口)가 있고, 성내(城內)에는 세 개(三個)의 샘 터가 남아 있다.
금사동(金寺洞)이란 속칭으로 불리어졌던 골짜기의 이름이다.

교통
역, 터미널에서 영원행 시내버스로 40분, 승용차로 30분
주변관광소
고부관아지, 은선리 산성, 은선리 고분군, 지사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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